2022 2022년 3월 1일 ~ 3월 15일
본문
03 / 01
자가격리 5일째.
아들, 킬링디어, 언컷잼스 총 3편의 영화를 봤다.
아침, 점심, 저녁. 모두 엄마가 챙겨주셨다.
몸 컨디션은 거의 다 돌아왔다. 저녁에는 친구가 전화를 주었다.
이틀 내내 무력했던 친구에게 내 안에 모순을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한 글을 읽어줬다.
수화기 너머로 달그락, 후루룩하는 소리가 들렸다.
통화를 하니까 갑자기 입맛이 돈다며 식은 밥 한 공기를 다 비워냈다고 한다.
종교에 상관없이 주변에 신점 보는 사람들 정말 많다.
다들 진지한 마음으로 무속인들 앞에 선다.
엄청나게 똑 부러져 보이고 세상 지혜로울 것 같은 사람들도 예외 없이 신점을 봤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도 종종 심심할 때, 불안할 때 인터넷 무료사주나 타로카드 유투브 같은 걸 본다.
근데 이걸 재미가 아닌 진짜 간절한 마음으로 찾아보게 되면 결국 이게 다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에 멈춘다.
조승연의 탐구생활에서 mbti 유형에 대한 답변이 인상 깊었다.
저 그런 거 안 믿어요. 나는 내 성격은 자아성찰을 통해 스스로 이해하려고 하고
나를 이해해 주는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려고 하지
너는 이런 유형이야 ! 개인적으로 별로 ~
아주 가볍고 단호한 말투로 이 질문을 훅 ~ 지나치는데
너무 마음에 들어서 mbti에 대한 과몰입이 모두 증발되어 버리는 기분이었다.
믿음도 결국 선택이다.
자신이 믿기로 마음먹은 것이야말로 운명이 된다.
사람은 자기가 보고자 하는 것만 볼 수 있다.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믿는다.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지만 그래서 더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삶에 대해 어느 것 하나가 정답이라며 확실한 말을 건네지 않는
가장 도망치고 싶은 것으로부터 도무지 도망가지 못하게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고 나면 마음속에 희미한 생명력이 싹트는
다르덴 형제의 영화를 믿는다. 아니 믿기로 선택했다.
정해진 운명에 멱살 잡혀 살아가는 것이 진실일지라도
생각보다 세상은 더 희망이 없고 추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03 / 02
전날 밤에 토마토 스파게티 먹고 싶다 ! 맘속으로만 생각했는데,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 ! 엄마가 점심에 토마토 스파게티 해주셨다. 야호 !
며칠 동안 계속 영화만 보는 게 질려서 어제는 로제타 딱 한편만 봤다.
대신 엄청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 브이로그 구경했다.
'우아... 저 사람은 어쩜 저렇게 부지런하지...?' 감탄스럽다.
아마 성실함의 에너지가 필요한 모양.
낮잠도 엄청나게 많이 잔다.
격리가 빨리 끝났으면 좋곘기도 하면서, 끝나가는게 디게 아쉽다.
앞으로 어떻게 생활해 나가야 할지, 거처는 어디로 정할지,
어떤 노동을 계속 이어나가야 하는지 고민해 봐야 한다.
사실 운동이 제일 많이 하고 싶긴 하다.
03 / 03
으악 자가격리 7일째.
방구석에만 있었지만 어제도 많은 일이 있었구만. (불과 어제인데 너무 까마득해)
1. 공공임대주택 서류 대상자 1차 합격 소식.
2. 도미노 포테이토 피자 시켜 먹음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핏자임)
3. 태준이 결혼식 못 갈 것 같아서 통화했는데 너무 재미있게 수다 떰.(이상한 랩 계속함. 제정신 맞냐고 백번 물어봄)
4. 목포 집 빼기로 결정. 마음먹은 즉시 실행에 옮김. 31일에 집 빼겠다고 말하고 화물차까지 일사천리로 착착 예약.
소식 알아야 할 것 같은 친구들에게 1차로 연락 돌렸음. 오랜만에 친구들 목소리 들으니까 짱 좋았음.
나는 왜 목포 집을 빼는가?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서울이 좋거나, 뾰족한 계획이 있는가? 역시 아니다.
알맞은 시기에 서로 잘 만났다가 각자 갈 길이 달라져 자연스레 멀어지는 인연처럼
목포를 떠나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직감했을 뿐이다. 제일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사실 6개월만 있으려고 했던 목포에 2년이나 있었으면 오래 있었지. 결정하니 속이 시원.
5. 휴먼 계정에 우연히 로그인했다가 기억 속에 새까맣게 잊혔던 화강암 같은 8년 전 블로그 발견. ㅠㅠ.
나는 내가 이렇게 블로그 열심히 한 줄도 몰랐다. (뭘 이렇게 기록해놓고 살았대 ㅋㅋㅋ)
근데 과거의 나 소름 끼치게 지금이랑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너무 재미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의 김송미가 과거 김송미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잔뜩.
똑같은 고민하는 과거의 나를 지금 발견해서 다행이다.
얘는 뭔가를 심각하게 걱정하지만, 늘 어떻게든 잘 수습했고 때때로 실패도 했지만 거기서 더 좋은 것을 발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내 앞으로의 미래도 그럴 것 같아서 힘이 난다. 빠샤 !
○●
아등바등해봤자.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있다.
찾아올 건 찾아오게 되어있고, 끝날 건 끝나게 되어있다.
내 인생은 왜 이래? 불평하지 말고 (뻔한 말이지만) "워쩔건디? 내 운명인디?" 하며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사랑과 감사를 발견하면서 살아갈꺼다.
역시 뻔한 말 is best.
03 / 04
엄마가 점심에 해주신 오므라이스.
잘 보면 계란 위에 LOVE가 써져있다 ㅋㅋㅋㅋㅋㅋㅋ
귀여운 엄마 ㅋㅋㅋㅋㅋ
오므라이스를 받자마자 숟가락으로 하트랑 알파벳 케찹을
슥슥 긁어 계란 전체에 평평하게 발랐다 ㅎ
어젠 정말 복잡할 것 같았던 약 10종의 서류 작성을 의외로 간단하고 능숙하게 처리했다.
하기 전에 '으악...이렇게 복잡한 걸 내가 할 수 있을까? 문서도 펼쳐 보기 싫다...' 했던 일인데
막상 그 일을 해내니까 의외로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디다.
세상에 이런 일들이 엄청 많겠지? 막상 해보면 별거 아닌 일들.
편견도 두려움도 무지에서 오는 것일 수 있지. 암.
늘 그렇득 틀리면 고치면 되고,
모르면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된다 !
○●
거의 모든 것들의 해답이 이미 나에게 있다.
곁눈질 하지 말자 ! 그게 맞으니까 그냥 그걸 합시다 ~
03 / 05
자가격리가 해제 되었고
음성이 떴다.
이불, 배게 커버와 그동안 입었던 옷들을 모두 빨았다.
헌 칫솔을 버리고 새 칫솔을 꺼냈고
손이 닿았을 곳들에 소독약을 칙칙 뿌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작업실에 앉아서 시나리오를 썼다.
요즘 미리멀리즘에 대한 욕구가 또다시 올라와
목포에서의 짐과 과천짐을 합치게 되면
그 짐의 딱 1/5을 줄이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의 공통점.
많은 것들을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담을 줄 아는 사람은 늙지 않는다.
자신의 룰만을 고집하고 그 세상이 전부라고 착각할 때 화강암같은 사람이 되어버린다.
03 / 06
무려 8일 만에 바깥공기 쐬는 날.
고작 8일이었는데 지하철마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낯선 느낌이 퍽 좋았다.
2달간 코리빙 맹그로브에 거주하고 있는 모아를 찾아갔다.
건강한 토마토 같은 웃음을 하고 내게 걸어오던 모아.
"송미 요즘 자꾸 안 보이던 게 보여. 아니, 내 눈에만 보이는 게 있나 봐"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볼 수 있대. 나도 자꾸 나한테만 보이는 게 있어"
모아가 맹그로브의 내부를 구경시켜 주었다.
체코에서 살았던 기숙사 구조와 느낌이 너무 비슷해서
그때 기억이 떠올라서 좋았다.
대화를 나눴다. 수다보다는 대화라고 쓰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모아랑 대화를 나누면 미래에서 온 인간이 된 기분으로 경청하게 된다.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두메가 도착했다.
요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해외 영화 커뮤니케이션 일을 하고 있어서
이것저것 재미난 소식도 들을 수 있었고 영화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한참을 수다 떨었네.
해외에 체류했을 때, 언어가 너무 딸려서
만약에 언어가 유창했다면 주변의 다양한 국가에서 온 친구들과는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을까? 라는 상상을 하곤 했는데
그에 대한 답이 모아와 두메와의 관계에 있는 것 같다.
우리의 관계성은 한국에서 전형적으로 유지되는 관계성과는 벗어나 있다.
나는 이런 느낌의 우정이 퍽 마음에 든다.
모아와 두메에게 많은 것들을 배우고 싶다.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 이라는 영화를 끝까지 다 봤다.
○●
나만의 은밀한 비밀이 너무 쉬운 방법으로 공개되어져 버리는 순간
그 안의 깃든 진실의 빛이 사라진다.
결국 내가 가진 생각과 말의 귀함도 스스로 알아차려야 한다.
모두 본인의 몫이다.
03 / 07
1.
점심에는 엄마랑 라볶이를 만들어 먹었는데 그 안에 든 만두 3개 중
나에게 한 개 더 먹으라 그래서 감동했다. ㅎㅎㅎㅎ
2.
오이 김밥 만드는 글을 읽다가 재료가 너무 없어서 슈퍼를 갈까 고민하다가
'오늘은 일요일이라 슈퍼 할머니가 교회 가시는 날이라 슈퍼문이 안 연다!'
라며 아주 스쳐 지나가듯 한 말이 인상 깊었다.
평소에도 타인에게 관심이 많고, 이웃들에게 먼저 말을 거는 사람의 글이었기 때문이다.
3.
자가격리 중 친구 집 앞에 작두콩 차와 각종 건강즙을 현관문에 조용히 놔두고 간
친구의 친구에 대한 게시물을 보고 마음이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친구에게 "야, 너 이런 친구도 있고. 진짜 부자네?" 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4.
블로그 이웃 봉부아님이 편의점 알바를 하며 종종 마주치는
표정 없는 젊은 애 엄마 얼굴에 웃음이 번지는 걸 보고 싶어서
그동안 가장 잘 먹혔던 오미크론 (?) 농담을 던져 깔깔깔 웃는 모습을 보고는
웃음 안타를 기대했는데 홈런을 쳤다면 뿌듯해하는 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
삶은 구체적인 것들의 총집합.
마음 근육도 많이 써본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
03 / 08
1.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 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렇게 깨알 같은 디테일이 살아있는 영화 만들려면 마음을 엄청나게 부지런하게 써야 한다.
2.
오랜만에 투두리스트 모두 다 이행. ^^v.
코로나 걸리기 전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로 낮은 생산력이지만
몸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가기까지 천천히 기다려주는 중이다.
산~뜻한 기분으로 저녁과 다음날 아침을 맞이했다.
3.
오랜만에 요리도 했다. 카페에서 팔 것 같은 맛의 스펨 넣은 까르보나라.
요리도 운동이랑 비슷한 게 시작하기 전엔 그렇게 싫다가 막상 끝내고 나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다.
엄마랑 나랑 먹을 거 2인분 휘리릭 해서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했다.
4.
산책도 했다. 이제 걷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는가 보다.
마음 같아선 우다다닥 뛰는 컨디션이 빨리 되었으면 좋겠건만 !
○●
부정적인 감정이 오는 건 나쁜 게 아니다. 자연스러운 것이다.
밝은 마음만큼 어두운 마음도 공평하게 소중하다.
어두운 마음 덕분에 겸손해질 수 있었고,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수 있게 되었고
많은 책과 영화를 더욱 집중해서 볼 수 있었고
나 스스로와 깊은 대화를 나누며 창작의 계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었다.
부정적인 마음 자체보다 그것을 어떤 태도로 맞이하고
적절히 해소해 나가느냐가 언제나 더 중요한 문제였다.
03 / 09
아침에 주접도 풍년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는데
김호중 팬클럽 아리스 소속이신 어머니들이 대거 출현하셨다 ㅋㅋㅋㅋㅋ
진짜 그립네. god 사정 없이 좋아했을 때의 그 극강의 행복함.
제 20대 대통령 선거를 하기 위해 모교에 방문했다.
이 구령대 진짜 서보고 싶었는데.
재능 있는 얘들만 서 볼 수 있었던 특권.
추억에 좀 젖은 김에 초등학교 바로 앞에 있는 상가도 들러보았다.
자주 가던 만화방도, 불량식품 팔던 슈퍼도, 문방구도 다 없어졌다.
만화방 아저씨,,,그림 그려오면 그림 문밖에 붙여주시고
고생했다고 맛있는 간식도 주셨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참 좋은 분이셨네.
교촌치킨 미리 주문 시켜 놓고 픽업해왔다.
3000원 배달비 너무 아까와....
노지의 제안으로 호수 공원에 다녀왔다.
미래 도시에 다녀온 느낌.
진짜 좋은 시간 보내고 돌아왔다.
어제의 일기는 여기에서 끝.
분명 재미있었던 일들이 참 많았는데
지금 몸도 머리도 너무 굳어 있는 상태라 실감 나게 글이 써지지가 않네...
운동을 쉬면 금방 근육이 없어지듯 생각도 게을리하면 이렇게 굳어버리는구나.
진짜 진짜 무섭네. 제일 무섭네.
노지도 나도 자가격리를 한 후 오랜만에 한 외출이었는데
나는 아직도 좀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고
늘 또랑또랑 똑 부러진 노지는 "이제 이제 (이런 게으름은) 그만 !!" 을 선포하며
아직 잔기침을 하는 상태이지만 오랜만에 피티도 받고 오고
늪 속에 빠지지 않기 위해 탈탈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같았다.
나도 그런 강건한 멘탈을 탑재하고 싶다.
김송미 정신 차리자 ! 정신 차렷 !!!!
3 / 10
개표 방송을 보느라 밤을 꼴딱 새웠다. (자다 깨다 자다 깨다.)
엉망인 컨디션을 부여잡고 오후 2시부터 일과를 시작했다.
어제 노지에게 좋은 자극 받고 간신히 운동 스타트를 끊을 수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헬스를 다녀왔다.
스트레칭 + 상하체 근력 + 유산소 꼼꼼하게 했다.
하지만 운동을 한 후 몸의 느낌이 이전만큼 개운하진 않았다.
샤워를 할 때는 약간 버겁기도 했다. 몸이 아직 이전만큼 돌아오진 않은 것 같다.
그래도 잘 다녀왔다. 적당한 타이밍이었다.
덕분에 아주 기절하듯이 초저녁부터 푹 ~ 잤다.
친구와 가끔 메일로 편지를 주고받는데 내 구글 계정이 자꾸 친구 메일을 스팸함에 넣어서
친구에게 같은 메일을 무려 7번이나 보내게했다. ㅠㅠㅠㅠ. 아 진짜 미안하고 고맙.
간신히 편지를 읽고 이런저런 대화도 나누고 싶어져서 전화로 대선이나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03 / 11
아침에 일어나 시나리오 쓰고
열심히 근력 + 유산소 운동을 하고
뻗.었.다.
오후에 세린이를 만나기 위해
오랜만에 우리의 아지트 커피클럽에 갔다. 둠칫둠칫 두둠칫.
대화 카타르시스란 이런 것인가 ! 세린이랑 대화 나눌 때 드는 생각이다.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단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훨씬 더 마음이 입체적으로 풍요로워진다.
그런 마음을 주는 친구가 곁에 있다는 것은 복이다 ~ 복.
03 / 12
어제 늦은 밤부터 아침까지 앤디 워홀에 대한 다큐멘터리 시리즈를 정주행했다.
느지막이 9시 30분쯤 일어나 엄마와 겨울 외투를 맡기기 위해 세탁소에 다녀왔다.
오늘까지 외투가 15% 세일이기 때문이다.
세탁소 사장님이 날 보더니 교포같이 생겼다고 하셨다.
교포같이 생긴 건 뭘까?
체코에 있을 때도 유럽 친구들이 "헤이 쏭. 너는 유러피안 느낌 아니다. 넌 누가 봐도 아메리칸이야" 이랬는디.
잘은 모르겠지만 캘리포니아 햇빛을 받고 건강하게 익는 듯한 교포였으면 좋겠다 ㅎㅎㅎ (매우 구체적)
사실 네츄롤한 파리지앵 언니들 같은 느낌도 넘 좋은데. (하여튼 사대주의 ㅉㅉ)
미국 사람이면 뭔가 힘 빡 들어간 느낌이고
유렵 사람이면 뭔가 힘 촥 빠진 느낌 들잖어.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단지 내에 있는 경로당을 발견했다.
"엄마 올해 몇 살이야?"
"63살"
"오호...!"
"아 짜증 나게 자꾸 경로당에서 오라고 문자와. 그럼 엄청 내가 노인이 된 것 같다니까?
이제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할걸?"
엄마가 이런 말을 하면 소갈머리 없는 막내 딸내미는 늘 이렇게 답한다.
"엄마 사람은 원래 모두가 늙어. 늙는 건 자연스러운 거야."
노인 취급받는 문자들과 배려가 싫다며 짜증 내는 엄마는
여전히 걸음걸이가 빠르고, 씩씩하고 몸도 날씬하고 튼튼하다.
매일 요가하고 소식해서 그른가?
오후에 햇볕도 쐴 겸 집 근처 이디아에서 상큼한 딸기 주스를 테이크아웃해서
기분 좋게 마시며 대공원을 쭉 한 바퀴 돌았다.
오늘은 토요일이기 때문에 대공원에는 연인, 가족, 아이들, 강아지들도 인산인해를 이뤘다.
주말에 여길 나왔다는 것 자체가 다들 엄청 부지런한 사람들.
동네 백수처럼 느릿느릿 걸으며, 쥬스를 쪽쪽 빨아먹으며 (이디아 딸기 주스 짱맛 ㅠ) 사람들을 구경했다.
굴러가는 바퀴가 신기한 듯 유모차 바퀴를 손으로 자꾸만 만지는 어린아이,
유치한 커플티를 입거나, 머리띠를 맞춰 쓴 귀여운 새내기 커플들
(내 곁을 지나갈 때 남자가 "자기야 오늘은 내가 다 해줄게 ~" 라고 했다. 쏘스윘~ ^^)
엄마와 아빠 손을 한쪽씩 잡고 위~~~잉 하며 팔 그네를 타고 있는 아이
팔짱을 꼭 끼고 다정하게 수다를 떨며 걸어가고 있는 중년 부부
나처럼 혼자 더벅더벅 걸어가는 생지 데님을 입은 20대 여자
사람들이 엄청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면서 갑자기 가자미 같은 눈을 뜨고
'그래, 저 사람들이 직장 가면 또 스트레스 엄청 주는 징하게 짜증 나는 사람들일 수도 있겠지?' 라는 상상도 했다.
평범하고, 특별한 수많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두 눈으로 꼭꼭 담으며
내 컴퓨터 모니터에 2년 동안 붙어있는 포스트잇 글귀를 생각했다.
작가의 임무는 평범한 사람들을 살아있게 만들고,
우리가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 나탈리 골드버그.
행복은 어떤 행위를 해야만 얻을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가치 중립적인 것들 사이에서 내 마음의 모순까지 받아들이려면
일단 특정한 사람, 상황, 심지어 나 자신에 대한 모든 '나쁘다', '좋다' 하는 판단을 내려놓아야 한다.
좋은 것이 언제든 나쁜 것이 될 수 있고
나쁜 것이 언제든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세상엔 흰색 검은색 보다 훨씬 더 많은 회색 지대가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며칠 전부터 매일 루틴처럼 하루에 한 가지라도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있다.
오늘은 아는 여자 비디오 테이프와 소장 가치가 있다고 착각했던 카메라 장비 박스들을 버렸다.
미니멀리즘 관련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1시간 동안 개인 공부를 한 후 오랜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
안생을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것들로 채우기에 달인이 되는 것보다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아도 그런대로 괜찮은 하루를 잘 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 또한 무엇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고 단지 내가 따르고 싶은 신념일 뿐이다.
03 / 13
어제는 오랜만에 새벽 5시 30분, 새벽 기상을 했다.
부지런히 시나리오를 쓰고
근력 + 유산소 운동을 1시간 정도 했다.
아빠가 내일 화이트데이라고 초콜렛을 사주셨다.
옴마 쏘 다정.
오후에는 언니와 형부가 잠깐 집에 들렀다.
형부가 엄마를 위해 무려 머랭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 대뱍...여기 ... 한국 맞지...?)
둘이 현관에 서 있는데 작년에 언니 생일 선물로 사준
커플 모자를 둘이 나란히 쓰고 있었다. 잘 어울려 보였다.
나는 살면서 우리 집안 남자들이 다정하고, 세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말도 크게 하고, 쉽게 화내고, 표현도 잘 할 줄 모르니까.
많은 것들에 서툴고, 너무 모르니까 그리 오래 대화 나눠본 적이 없다. (친가 쪽)
그런 우리 집에도 천천히 변화가 오는 것 같다. 변화가 나쁘지 않다.
어제 조승연의 탐구생활에 올라온,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관련된 외신 언론 보도 비교하는 영상을 시청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뉴욕 타임즈에 기재된 수정주의와 복수주의의 개념.
사람은 힘든 일을 겪었을 때 두 유형으로 나뉜다.
"아 이런 고통은 나 하나로 족해. 다른 사람은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 나만 당할 수 없다. 너도 당해봐라 !"
기본적으로 전자의 개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영상을 보고 세이브더 칠드런 우크라이나 아이들의
생계, 기초생활지원 관련 모금에 소액 기부했다.
○●
I need 일상의 리듬. 둠둠탁 ! 둠탁 !
03 / 14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루틴을 하고
진득하게 시나리오를 썼다.
점심쯤 엄마가 내 최애 빵. 프롬 더 어스의 버터 프렛츨을 사 오셨다.
며칠전에 진짜 맛있는 빵이라고 말한 걸 기억하신 모양. (감동....!)
터키 커피와 함께 정말 맛있게 먹었다.
월요일엔 헬스클럽이 닫아서 밤 산책을 한다.
하루 종일 앉아만 있었더니 내가 걸었던 걸음은 총 67보 ^^a
밖에서 간신히 10000보 채우고 들어왔다.
저녁에는 진짜 기분 좋게 혼술 ! 알쓰인 나에게 딱이다 ㅎㅎㅎ
상쾌하게 한잔 딱 마시니 잠이 솔솔 왔다.
하루를 되돌아보니 아주 조금씩 조금씩 이전의 루틴, 에너지, 페이스로 돌아가고 있다.
덕분에 먹구름 같았던 부정적인 마음도 서서히 걷히고 있다.
먹구름 기간이 끝나면 꼭 무언가가 하나씩 나에게 남기 마련인데,
이번엔 참을성 있는 마음이 미세하게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느낀다.
먹구름 시즌엔 인생이 쉽게 따분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그 구멍에서 빠져나올 온갖 자극적인 일탈행위 도모하게 된다.
그로 인해 꼭 실수를 하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잃고 곧 그 일의 무게에 눌려
공연히 자신의 삶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이유를 하나 더 만들어 버리게 된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때가 되면 자연스레 걷히게 기다리는 것.
이 상황들이 나에게 어떤 말을 걸어오는지 계속 귀를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지금은 옅은 회색 빛깔 정도.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천천히.
그러다 보면 반드시.
○●
오늘도 각자만의 지루한 레이스를 하고 있을
모든 사람들 파이팅.
03 / 15
근력 운동을 한 후
드디어 드디어 밖에서 러닝을 성공했다. (2.2k)
러닝머신 위에서 뛰는 것과는 비교도 안되는 상쾌함 ! ㅋ ㅑ.
친구네 집에 가기 위해 외출 준비를 했다.
맨날 집에서 츄리닝만 입고 있으니까 밤색 코트 같은 게 입고 싶었다.
마침 민지에게 전화가 와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길을 걸었다.
지수 은혜네 집 도착스.
매번 맛있는 걸 한상 요리해 줘서 늘 만족스러운 식사를 하고 간다.
게다가 진짜 맛있는 막걸리도 마셨다.
고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너무 당연하게
넙죽 받아먹기만 하는 게 아닐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정말 오랜만에 인애 씨를 만났고,
특별한 선물을 주셨다.
1 Day, 1 Happy.
다들 잘살자 !!! 잘살자 ~~~ !
○●
솔직하게 무언가를 말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는 얼마나 솔직한 사람인가 생각해 보다가
그런 생각 할 시간에 솔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행동을 해보자 생각했다.
나의 욕구, 타인의 욕구 모두 중요하기에.
댓글목록
제이님의 댓글
제이 작성일엄마가 써 준 love를 평평하게 펴 발랐다는 게 참 송미 답네 ㅋㅋㅋㅋㅋㅋ
song님의 댓글의 댓글
song 작성일ㅋㅋㅋㅋㅋㅋㅋ I like dam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