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022년 5월 16일 ~ 5월 31일
본문
5/16
오늘도 귀뚜라미가 우는소리에 잠에서 깼다.
텐트 안으로 훅 들어온 기랑이의 발.
어우 ㅋㅋㅋㅋ 짬짝 놀라 발바닥에 딱밤을 때렸다.
아침에 일어나 마시는 공복에 물 한 잔 !
손현녕 작가님의 책을 3장 정도 읽었다.
나무 사이를 매일매일 걷고, 뛰고.
중간쯤에 어제 성격 테스트 한 친구의 성격 테스트 결과를 들었다.
운동 다녀와서는 어제 싸온 부시맨 드레드를 먹었다.
아웃백가서 무려 점심, 저녁, 아침을 해결.
이 정도면 뽕빼~쓰.
오후 3시쯤 하늘이 작업실에 왔다.
하늘이 만든 단편 영화를 시청했다.
서로의 시나리오 얘기를 말하다가 하늘이 아이패트를 꺼내더니 슥슥 도형을 그렸다.
(위에 그림은 내가 다시 노트에 그려본 것)
물리학과 나온 이과생의 시나리오 구조와
영화과 나온 예대생의 시나리오 구조가 이토록 다르다는 걸 깨달은 하루.
하늘은 시나리오를 생각하기 전에 도형과 구조를 먼저 생각하고
나는 하나의 장면, 에너지, 대사에서 이야기가 출발된다.
다른 차원으로 사고해 볼 수 있어서 신기했고 재미있었다.
너굴 대장님이 부하들을 위해 먹이를 가져왔다.
메뉴는 너굴 대장님이 제일 좋아하는 마라탕과 고량주.
진짜 너무 맛있었음 ㅠ.
갸루피스 하는 신세대 같은 둘. (신세대라고 하는 순간 신세대 아님 주의)
빼 찢어지게 웃고, 영화에 대해서 진짜 질릴 만큼 끝까지 대화도 하고
참 밀도 있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
기랑이의 한 마디에 정말 크게 웃었는데
배가 아플 정도로 웃었는데.
사실, 그게 왜 웃긴지 모르겠다.
그냥 웃겼다.
그냥 웃겨서 참 좋았다.
5/17
엄청 화창했던 날씨.
푸릇푸릇한 나무 길을 걸으며 산책을 했다.
신나는 노래도 들었다. 기분이 날아갈 것 같이 좋았다.
중간에 소영이에게 전화가 와서 통화를 하며 더 걸었다.
어젠 많은 친구들에게 연락이 왔다.
누군가가 날 찾아주면 그저 "감사합니다~" 한다.
간단하게 시나리오 쓰는 일을 마무리했다.
어제 기랑이가 저녁을 만들어줬다.
밥을 먹고 약 2시간 30분 정도 스테인드글라스 재료를 다듬었다.
이제 속력이 제법 붙고 있다.
밤 10시 30분쯤 서로의 일과가 끝났다.
하루 마무리를 하기 위해 작업실 바로 앞에 있는 굿타운에서 레몬사와 한 잔을 마셨다.
갑자기 사장님이 서비스로 주신 아이스크림.
바닐라 아이스크림 + 술 + 초콜릿 + 딸기 조합.
진짜 센스쟁이 ㅠㅠ....
기분이 1초 만에 좋아지는 마법.
○●
내일이면 우리의 2주간 생활이 마무리가 된다.
알게 모르게 기랑이의 습관이나 패턴이 나에게로 많이 옮겨 왔을 것이다.
일단 빡빡하게 적어둔 시간표를 찢어버렸고,
굳이 이 시간에 이걸 꼭 해야 해 ! 꼭 지켜야 해 ! 하는 강박이 줄었다.
그리고 장난기 많고, 많이 웃는 내 모습이 다시 돌아왔다.
아마 집으로 돌아가면 기랑이에게 받았던 영향과
본래 내가 살아왔던 패턴이 섞여 또 새로운 패턴을 만들겠지?
그게 어떤 방식으로 변형될지 궁금하다.
내가 나 자신을 깨면서 느끼게 된 건...
역시 사람은 자신의 본성이 잘 충족될 때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충족되는 기분 같은 것.
그러나 본성대로만 살 수는 없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내 본성과 기분에 의해서 살다 보면 아마 너무 많은 말, 너무 많은 약속들 너무 많은 소비들
너무 많은 음식들 너무 많은 새로운 사람들 수습되지 못한 너무 많은 일들 속에 갇혀
스스로에게 질려 버릴게 분명하니까.
어떻게 하면 내 본성을 충만하게 채우면서 동시에
균형 잡힌 생활을 굴릴 수 있을까?
5/18
오늘은 부산 마지막 날이라 늦잠도 자고 오전까지 뒹굴거렸다.
어제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친구가 걱정되어 전화를 걸었다.
허나, 아무래도 낙담에 빠진 이의 마음을 달래주진 못한 것 같다.
나는 너무 빨리 털고 일어나는 급한(?) 성격이라
서글픔에 천천히 그리고 잔잔하게 머물러 있고 싶은 이를 보듬어 주는 데는 서툰 것 같다.
어이없는 농담으로 허허허 웃겨 주기라도 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심각한 문제 앞에서는 심각한 표정을 짓고 깊게 고민하는 스타일이라
아무래도 그 방법도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
할 수 없지, 나의 한계인가 보다 하며 인정하려고 한다.
나도 나 나름대로 타인에게 줄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노트 한 권을 들고 카페 얼룩에 갔다.
지금까지 총 3번의 방문.
좋아하는 곳이 생기면 반복적으로 그곳에만 가게 된다.
3시간 동안 커피 2잔을 시켜 놓고
2주간의 시간을 찬찬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과천으로 돌아가면 실행할 새로운 계획이나 다짐도 적어 보았다.
시나리오의 아이디어도 떠올랐다.
이 공간이 나에게 주는 힘은 대단하다.
잘 살고 싶어지는 마음을 준다.
마법 같은 2주의 시간이 끝나고
상처받을까 봐 미뤄왔던 일들에 한 걸음이 아니라
열 걸음은 더 걸어갈 마음을 먹게 된 것 같다.
나는 나의 에너지를 믿는다.
기랑이와 마지막 저녁 식사를 먹었다.
저녁 식사를 먹은 후 시나리오 작업을 간단하게 끝내고
1시간 정도 스테인드글라스 재료를 다듬었다.
빈손으로 오지마 줌 모임을 했다.
오른쪽에 있는 건 기랑이가 그리고 있는 꽃 그림.
나는 인상 깊게 읽었던 칼럼 하나를 공유했고,
던지고 싶은 질문 3개를 정리해갔다.
저녁 12시쯔음... 기랑이가 2주간의 시간을 굿타운에 가서
회고하자고 제안해 주어 청포도 사와를 한잔 마시며 대화를 나눴다.
○●
사실 이날의 일기를 다음 날인, 19일 1시에 (현재 시점) 쓰고 있는 중이다.
집으로 도착했고 작업실을 열어보는데 내 방도, 작업실도 극도로 물건이 없고 단정해 보였다.
말없이 밥을 먹고 짐을 풀고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일상의 각을 잡고 있는 나를 보면서
그 이전의 내 모습으로 돌아간 걸까? 하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살다 보면 알게 되겠지.
부산을 다녀온 후 나의 변화.
그런데 더 생동감 있고 용감하게 살 거야.
지금 같은 마음에서는 한 천 번은 더 상처 받아도 끄떡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천 한번 다시, 다시 시작하자. 다시 용기를 내보자.
5/19
오늘은 부산을 떠나는 날,
도착했을 때도 기랑이가 캐리어를 올려줬는데
돌아갈 때도 케리어를 내려주네.
뭔가 많은 것들을 느끼고, 나 스스로가 바뀐 여행을 다녀오면
창밖의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게 된다.
약 1시간쯤, 턱을 괴고 지나가는 초록색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손헌녕 작가님 책을 기차 안에서 다 읽었다.
2주간의 부산을 떠올리면 이 한 권의 책도 같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솔직해지는 것에 대한 글을 읽었다.
나이가 먹어가면 점점 더 솔직하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더욱더 사명감을 갖고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타인을 상처 입히는 무기가 되는 그런 솔직함 말고,
손해나 상처를 무릅쓰고 나부터 내 패를 먼저 까 보이는 솔직함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내 마음을 소외 시키고 싶지 않고 동시에 타인에게 안전한 사람이 되고 싶다.
책 끝 날개에 적힌 글자.
나는 어떨 때 가장 살고 싶어질까?
서울역에 도착했다.
밥을 먹고, 짐을 풀고, 오늘과 내일 해야 할 일의 리스트를 적어보았다.
2주 만에 돌아온 내 공간이 단정해 보였다.
중학교 동창 단비와 혜원이를 만났다.
우리는 중3때 단비의 삼춘 방에서 뽀려온 19금 비디오를 처음 접한 사이다. ㅎㅎㅎ
장소는 우리집이었는데, 치즈크러스트 피자를 시켰던 게 기억이 나고
하리수가 나오는 노란머리 2를 플레이 했다.
그리고 5초 만에 꺄악 하며 소리를 지르고 껐다.
우리는 서로 만나기만 하면 그때의 에피소드부터 꺼낸다. ㅋㅋ
단비는 임신 7개월,
혜원이는 10월에 결혼을 한다.
정말 축하할 일이다 !
과천에 돌아오고서 정신이 없었는데 과천에서 일하는 혜원이를
동네 친구처럼 종종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 011폴더폰 쓰던 아날로그 단비와
늘 내 얘기를 침착하고 재미있게 들어주는 혜원이.
둘 다 참 착한 애들이다.
단비는, 나와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기훈이와 무려 10년 이상 연애를 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오랜만에 기훈이에게 인사하고 싶어서 함께 나갔는데 어색했는지 아님 신기했는지
나를 위아래로 계속 ㅋㅋㅋ 훑어보더니,..."너...되게 히피...? 자유로워 보인다...." 라고 말했다.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고 갔는데 어떤 부분이 자유롭고 히피스러운진 모르겠지만 난 뭐, 반가웠다.
둘을 보고 있으면 그 해 여름은에 나오는 주인공 같기도 하다.
첫사랑과 쭉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한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오늘도 손석구를 구글에 검색해 보았다.
정말 멋있다. 매력이 철철 흘러넘친다.
외모 뿐만 아니라 꾸미지 않고 솔직한 성격이 너무 멋있다.
갑자기 단발로 자르고 싶어 미치겠다.
싱글즈에 나오는 장진영 언니 머리를 하고 싶어 사진을 찾아봤다.
극중 인물 이름이 나난? 이었는데 이름까지 핵 매력적.
○●
요즘 부쩍 주변 사람들에게 자유로워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특히 과천 친구들 소식을 듣게 되면 나의 어떤 구석이 더 도드라져 보인다.
과천은 정말로 보수적인 동네이다.
여기서 태어난 아이들은 여전히 여기에 뿌리를 내리며 살고 있다.
여기서 학교를 다니고, 여기에 신혼집을 얻고, 여기에서 아이를 키우며 살아간다.
반면 나는 20살이 되자마자 이곳저곳을 계속 쏘다녔다.
직업군도 공무원, 약사, 변호사, 증권사, 대기업 등등.
거의 대부분의 친구들이 불평불만 없이 틀 안에서 잘 살아가고 있다.
사람은 참 다양하다.
편식하지 않고 다양한 사람과 대화를 나눠봐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5/20
하와이로 떠납시다 ~^.^~
수박의 계절이 왔다. ~ ^3^ ~
보리차도 수박도 더 맛있어지는 계절.
하늘과 시나리오 모임을 했다.
원래 1시간만 하려고 했는데 무려...2시간 반을 떠들었다. (이것도 중간에 커트한 것...)
그동안 각자 충분히 다각도로 공부했던 게 쌓여서 그런가
유의미한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다.
시나리오를 위해 고독사와 일본의 증발 현상에 대해
자료 조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일본의 증발 현상은, 자신의 주변부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모두와 수식을 단절하고 새 삶을 사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걸 도와주는 업체까지 있다.
집도, 직업도, 신분 세탁도 말끔하게.
줌 모임을 끝내고 일본 증발 현상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봤다.
고독사로 죽은 이들의 장례를 치러주는 스님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인간은 모두 평등하니까요.'
진리는 단순하다.
사실 모두가 다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왜, 더 대단한 곳에서 진리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까?
인간이 흘러넘치는 세상에서 왜 한 인간을 온전히 보듬어주지 못하는가?
하늘이 던졌던 이 화두는 다음 모임까지 계속 고민해 볼 작정이다.
아무래도 긴 머리 히피펌은.... 10년 후에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단발로 싹듁 잘랐다. 역시 단발이 훨씬 더 잘 어울린다.
오늘은 차홍에 안 가고 그냥 동네 미용실에 갔다.
단발머리 자르는데 비싼 곳 갈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머리는 그냥 동네 미용실에서 자를 란다.
가격이 4배가 싸다. 그리고 머리도 만죡
여,,, 여기 과천 맞지?
역시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흰자가 맞는 걸까?
목포보다 더 시골 같던 과천의 풍경.
하루 종일 운동을 못해서 사당까지 왔다 갔다
왕복 1시간 20분 동안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운전면허 학원 등록 ! v^_^v 예 ~
운전면허 학원을 등록하고 학원에 나와서 인스타를 켰다.
유명한 친구가 다른 유명한 친구들과 근사하게 차려 입고 찍은 사진을 보고서는
약 1분 정도 질투가 났고, 그전까지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으악 안 되겠어. 나도 빨리 나를 개발하고, 멋져 지겠어 ! " 하는 충동이 훅 ~ 올라왔는데
가만있어 보자... 그걸 내가 진짜 원하나? 잠잠히 생각해 보다가
아니지 아니지... 막상 나는 그런 자리에 가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앉아있었지
애초에 나를 모르는 사람이 나를 아는 걸 막 유쾌해하진 않지. 하며 바아로 인정.
그래도 이 위기감 (?) 자극 (?) 을 받고,
차라리 서점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진짜 책 제목 잘 뽑아 ^_^
사람들의 자격지심을 잘 건드리는 책 ~
산 책 2권은 밀라논나님과 최재천 교수님의 책.
순간순간 나를 세상에 던지고 받는 즉각적인 반응 말고,
오랫동안 자신의 길을 즐겁게 걸어가는,
매일매일 변화하고 배우려는 어른들의 지혜를 배우면
어쩌면, 거기에 진짜 원하는 방향이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오자마자 띠지는 버렸다.
버리기 전에 사진으로 남겨둠.
일단 밀라논나님 책부터 읽을 생각이다.
집에 돌아와 청년 시절 변영주 감독님이 언급한
여성 영화에 대한 정의를 다시금 상기하기
중요 부분을 노트 위에 적었다.
저녁엔 제주도에 있는 아영과 오랜만에 통화했다.
통화할 때마다 너무 재미있어 ㅋㅋㅋㅋ
나를 웃겨주는 사람이 몇 안 되는데
아영 목소리만 들어도 배시시 웃음이 난다.
회복 탄력성 개쩌는 우리 v^_^v.
이 글귀는 기랑이가 캡처해서 보내준 것이다.
이 이전에 낭비하기 싫어서 모든 영역을
줄이고 줄여, 뭐든 극도로 효율적이고 단정하게 만들었는데
앗. 생각해 보니 그 안에 낭만이 없었다.
그래, 사실 예술도 어떠한 낭비나 과잉에서 탄생하는 거긴하지~
5/21
괜히 아침 루틴 순서를 바꿔보고 싶었다.
일어나자마자 운동하고 시나리오 쓰기.
그런데, 계속하던 순서가 꼬여버리니까
일기도 하루치가 밀려 버렸다.
하던 대로 하자.
지루해서 잊고 있었는데 성경 필사하고
이렇게 홈페이지에 어제를 남기는 게 최적이야.
오랜만에 반바지와 반팔을 입고 운동한 날.
고이 모셔만 둔,
친구가 선물로 준 비싼 핸드크림을 개시했다.
아무리 좋은 것도 장롱 속에 넣어두면 뭐하노 꺼내 써야 의미가 있제.
든든하고 건강하게 밥을 챙겨 먹었다.
스킨, 로션만 샀는데 이렇게 많은 샘플들이 딸려왔다.
자전거를 타고 남태령 근처에 있는
카페 언트로 가보았다.
자료조사를 위해 청년 고독사에 대한 kbs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청년 고독사 원인에 대한 전문가 왈.
청년들 같은 경우 혼자 고립된 삶에 익숙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고독사의 문제가 되는 1인 가구들은, 스스로 원하지 않는데 1인 가구가 된 경우가 상당히 많아요.
이분들의 이 불안정한 일자리나 경제적인 지위가 고립과 외로움을 더 극단적으로 만들고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고독사이기 때문에 눈여겨봐야 한다.
'청년 고독사' 왠지 나에게 먼 일 같고 무시무시한 단어처럼 느껴지지만
원인을 살펴보면 우리 모두에게 그리 멀지 않은 개념이란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나에 대해서도 좀 아이러니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인간관계에 대한 부분이 그렇다.
타인들은 내가 항상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아서
어떻게든 타인들과 교류하려고 애쓰는 쪽이라고 생각한다.
혼자 있어야 하는 시간이 너무 많았다.
타국에 있었을 때도, 매일 파티를 벌이는 친구들 사이를 해치고 나와
늘 배낭을 메고 아침 일찍 여는 카페나 도서관에 가서 편집을 하거나
목에 카메라를 걸고 장면이 나올 때까지 촬영을 하던 시간들이 생각난다.
자취를 했을 때는 일을 끝내고 파김치가 된 후,
푹, 하고 침대 속에 들어가 배달앱을 켜고
뭔가를 막 먹고 눈을 뜨면 또다시 새로운 아침이었다.
내가 왜 절대 돌아오지 않겠다던 부모님 집으로 저벅저벅 다시 걸어 들어왔을까?
생각해 보면 무엇보다도 너무 외로워서였다.
그 외로움이 너무 크고 막강해서 그게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았다.
지금 이 글을 쓰는데 엄마가 계란을 찌는 압력 밥솥 소리가 난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나는 이 소음이 너무 좋다.
이 소음을 들으려고 이 집에 다시 들어왔다.
사실, 청년 고독사 다큐를 보며 가장 눈에 들어왔던 건
화면 속에 종종 등장하며 고독사가 발생 된 원룸에 들어가거나
삶의 끝자락에 있던 청년들을 인터뷰 하던 이유심 pd였다.
다큐멘터리를 다 본 후 이유심 pd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그리고 그제야 왜 내가 다큐멘터리에서 갑자기 시나리오를 쓰겠다고
선언했는지 그 이유를 복귀할 수 있었다.
다큐 하는 마음이란 책에서 다큐멘터리라는 매체를 이렇게 정의한다.
함께 머무르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용기이고 응원이고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머무르는 시간 동안 새겨진 현장의 바람, 목소리, 눈물을 다큐멘터리 영화라는 몸을 얻어
관객들을 만나는 순간 저마다의 이야기를 다시 피어난다. 이것이 다큐멘터리가 가진 힘이고 사랑이다.
이러한 연유로 다큐멘터리 감독님들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동시에 이러한 연유로 내가 그 깜냥이 되지 않는다는 걸 다큐를 만들면서 거의 숨 쉬듯이 느꼈다.
혼자 고독하게 울고 있는 사람들, 슬픔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듣는 최초의 청자가 되겠다고 다짐하고선
카메라 안팎으로 버거웠던 삶의 무게를 덜어내는 이들의 말을
하루 종일 듣고 난 다음날이면 꼬박 하루를 앓아누웠다.
솔직히 이렇게 쓰고 있는 지금도 벌써 죄책감이 든다.
타인의 삶에 들아가게 된다는 말은 곧, 내 생활을 일정 부분 포기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타인의 스케줄에 따라 내 일정을 다 맞추고, 가장 젊고 예쁜 나이에 기능성과 편리성에 초점이 맞춰진 옷만 입고 싶지 않았다.
매일 사회의 안 좋은 면만 바라보며 주변에 행복하게 사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이
잘못되었다며 삐딱한 시선으로 불특정 다수를 평가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뛰어들고 싶었던 이유는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것만을 보여주는 미디어의 홍수 속에
보여지지 않은 진짜 현실을 꺼내어 그 괴리감을 좁히고 싶었다.
내가 본 청년 고독사 다큐멘터리의 제목은 '죽어야 보이는 사람들' 이었다.
살아서 잘 보이는 사람들은 내가 아니어도 모두가 달려들며 이미 찍고 있을 테니까.
그런데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보이게 하는 데에는 마땅한 책임이 따른다.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빌려 쓴 책임.
그 책임감이 너무 커서, 기록은 평생에 남는 거니까
인터뷰이의 인생에 평생 주홍 글씨가 될 것 같은 상황이나 말들은 늘 최종에서 편집하고 말았다.
사실 그 안에 현실의 증언이 담겨 있다는 걸 알았다.
거기에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의 한계를 느꼈다.
나는 너무 유약했고, 나부터 가진 게 너무 없었고, 나를 심하게 자책했고
나를...나를.... 죽도록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이렇게 이기적인 인간에게는 차라리 영화라는 매체가
더 이야기 하기가 쉬울 수도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진실에 가까운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들었던 생각, 보았던 현실의 단면, 삶의 아이러니나 아름다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덜 죄책감 받으면서...
그러면서도 계속 이전의 꿈을 품고 달려갈 수 있는 것.
사람들을 살아가게 하는 이야기.
그걸 만들면서 나도 살고 싶은 이야기.
영화 매체로 진입하니 이것은 다큐와는 다른 힘듦이 있다.
고통의 총량은 똑같다. 역시 쉬운 건 없다.
그래도 적어도 나와의 싸움이라는 사실이 ....
적어도 내가 지키고 싶은 사람들을 상처 주진 않을까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위안이 된다. 계속 앞으로 나갈 동력이 된다.
하나님, 저 좋은 이야기 만들게 해주세요.
그 이전에 좋은 인간부터 좀 되게 해주세요.
5/22
아침을 먹고 바로 시나리오를 썼다.
점심에 나의 해방일지를 보면서
떡만둣국을 먹었다.
얼마 전에 좋아하는 카페에 꽂혀 있었기도 했고,
지인의 소개로 궁금해서 읽어본 '모든 동물은 섹스 후 우울해진다.'
자신과 대화가 너무 잘 통한다고 신나하는 오빠에게
저격하는 글을 보고 쿡쿡 웃었다.
사실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아이들이
사석에서 토로하는 내용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걔는 재미있겠지... 걔는 재미있었겠지...."
하며 너무나 허탈한 표정을 짓는다.
이 사실을 알면 남자들 등줄기가 서늘해지려나?
사실, 나는 맞춰주는 대화는 거의 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이야기를 주로 한다.
그래서 누군가는 내가 말이 너무 많다고 갑자기 맥 커터처럼 말을 끊거나
너무 진지해서 하품이 난다며, 수박 겉핥기 얘기로 화제를 확 돌려버리거나
하품을 하고 자러 들어가기도 한다. (응? ㅋㅋㅋㅋㅋㅋ)
그러다가 진짜 드물게 서로 대화가 재미있는 사람을 만난다.
주로 그런 사람들과 대화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대화의 지분도 반반이다. 서로의 관점이 있다.
탁구를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지 그것보다 더 긴 포물선을 그리는
공원에서 슬렁슬렁 배드민턴,,,?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는 그 사람들의 소식이 주기적으로 궁금하다.
요즘 어떤 생각을 제일 많이 하는지. 그것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했는지.
그 생각이 나와 얼마나 다른지, 또 얼마나 같은지.
저번에 만났을 때와 지금 만났을 때 그 사람들과 나는 얼마나 바뀌었고 또 같은지.
도서관을 나와서 공원을 보았다.
푸릇푸릇 싱그럽다.
동작과 이촌역 사이. 한강의 풍경.
너무 좋아서 그랬나? 그만 내려야 할 역을 놓쳐서 한강을 두 번이나 봤네.
염창역을 지나치는데,
나의 해방일지 염창희가 생각났다.
오늘은 민지의 낭독회가 있던 날.
신방화역에 있는 다시 서점을 방문했다.
사장님, 서비스가 너무 좋으신 거 아닙니까~?
책방 사장님께서 민지 글이 실린 책 한 권과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공짜로 주셨다.
민지가 조용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글을 낭독했다.
민지의 타임라인을 조용히 지켜봐온 사람으로서
글자가 글자로만 읽히지 않아서
마음속으로 울컥하다가 자랑스러웠다가 멋지다고 생각했다가 이상하게 다시 울컥해졌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팠다.
낭독회가 1시간이 넘어가자 고급진 분위기 속에서 내 배에 자꾸 꼬르륵 소리가 났고,
그 소리가 나에게는 거의 천둥번개 소리 마냥 우렁차게 들렸다 ㅠ.
게다가 성인 ADHD의 대표 주자로서 금방 집중력이 흐트러지고
옆에 앉은 슬기랑 이거 끝나고 뭐 먹을까에 대해 노트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내가 분명 스시 먹고 싶다고 했는데, 결국 샤부샤부 먹으러 갔다.
(그럴 거면 내 의견 왜 받았서 ^_^?)
민지는 엄청 창피해 했지만,
대한민국 만세 포즈를 취한 뒤 사진 찍어달라고 했다.
시인 양반이라고, 점잔 빼는 꼴 우린 못 참아 !!!!
아, 그리고 멀리서 낭독회를 보러 와주신 민지의 독자분이 생각난다.
진행병이 돌아서 민지가 사인을 하는 동안
민지 글이 왜 좋은지, 어떻게 좋은지 집요하게 여쭤보았다.
"저는, 민지님 에세이가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밝고 그런 분위기도 좋지만...뭐랄까....그 침착하고 낮은 분위기에서
하는 말씀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걸 또 위트로 만들어서
무겁지만은 않게 쓰시는 것 같아요. 제 마음과 비슷해서 신기했어요"
민지의 두꺼운 책 2권에 겹겹이 포스트잇이 붙여져 있었다.
하나의 창작물이 누군가에게 정확히 가닿는 기적.
그것을 두 눈과 귀와 촉각으로 확인하는 순간 더 걸어갈 동력을 얻는다.
후식으로 아이스크림까지 나오는 샤부샤부집에 갔다.
샤부샤부는 먹기 전엔 너무 싫은데 (귀찮아서)
막상 먹고 나면 진짜 만족.
슬기와 과장님을 보내고,
민지와 둘이서 맥주를 마시러 갔다.
요즘 체코 향수병에 빠졌는데,
그 핑계로 시나몬 뿌려진 코델다크를 마셨다.
언젠가.... 혼자 체코 여행을 가리....
체코 여행에서 마음껏 시간을 낭비하고 오고 싶다.
신나게 술 먹고 떠들고 둘 다 약간 취했다.
나는 내 친구들이 취한 걸 보면 왜 이렇게 기분이 좋으면서
정작 내가 취한 걸 보면 왜 이렇게 꼴 보기가 싫어지지...?
술 먹고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 인스타에
칭찬 혹은 오지랖 댓글 짱 많이 남겼다. 후회한다.
인스타 당분간 하지 말아야겠다. ㅠㅠ.
나중엔 딸꾹질하면서 민지한테
나한테 상처 준 사람들에 대해서 일러바쳤다.
ㅠㅠㅠ 엉엉어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은 다 잘 지내.
그럼 내가 이상한 걸까? ㅠㅠㅠ 엉엉.
K 막내 송미는 다소 막내 같은 하소연을 쏟아냈고
K 장녀 민지는 네일아트 한 예쁜 손가락으로
한사랑 산악회 이택조 배상이 즐겨 하는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진짜 큰 언니 같은 말을 해줬다.
"송미 넌, 진짜 좋은 사람 만나야 돼.
건강하고 바른 사람. 그게 너한테 맞아"
민지 언니 ㅠㅠ..엉엉엉....
근데... 사는 거 너무 힘들고 외로워 죽것어요 ㅠㅠ.....
앞으로 저도 누군가를 추앙하고, 추앙받으며 살고 싶어요.
5/23
김영하 작가님께서 엠비티아이는 내가 생각하는 나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내 엠비티아이를 해보고 그 간극을 느껴보는 게 재미있다고 하셔서
친구들 엠비티아이 돌아가면서 해주기로 했는데 첫 번째 주자로 슬기 걸 해주었다.
슬기가 생각하는 자신과 내가 생각하는 슬기 엠비티 아이가
단 한 개도 맞지 않아서 놀랐다. ㅎㅎㅎ
친구들이 해준 내 엠비티아이와 내가 생각하는 엠비티아이가 모두 맞아서도 놀랬고.
에잇 재미있는 반전이 좀 있으려나 내심 기대했는데,
내가 아는 나와 남이 보는 나의 간극이 그렇게 크진 않구료.
오늘부터 운전면허 학원에 다닌다 v^_^v (예~)
솔직히 운전에 대한 마음이 아직도 별로 없긴 한데,
나 스스로가 미뤄왔던 것을 도장 깨기 하듯 하나씩 깨고 싶기도 했고
아무튼 언니, 책에서 작가님이 운전을 할 수 있으면 얻을 수 있는 자유에 대한 글을 보고
그래, 그래 ! 이번엔 좀 따자 ! 생각했다.
저녁엔 서울역 근처에 있는 커피숍에 갔다.
지은 언니의 소개로 진영씨를 처음 만났다.
주선자가 거의 1시간 늦게 오는 바람에 ㅎㅎㅎ
진영씨와 내가 초면의 느낌으로 인사를 주고 받았다.
진영씨도 영화 현장에서 낯선 사람들을 많이 경험하셔서 그런가
나 또한 낯도 안 가리고 처음 보는 사람이 어렵지 않은 사람이라서 그런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로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진영씨는 첫 장편 시나리오를 막 끝내고, 투자도 결정되어 캐스팅을 고민하고 계신 단계라고 하셨다.
현장 경험도 정말 풍부하시고 무엇보다 '리틀 포레스트' 현장을 경험하신 분이라 그게 너무너무 부러웠다.
진영씨께 부탁해 현장 얘기와 궁금했던 얘기를 많이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장편에 입봉한 주변 감독님들을 그러는데 처음 첫 장편 시나리오 완성하는 게
영화 전체의 80%를 끝낸 거와 다름없대요"
그래, 그래. 첫 장편 시나리오를 토해내는 것 그게 진짜 어려운 거구나.
이 산만 넘으면 다음 산은 어쩜 훨씬 더 수월할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가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이 죽일 놈의 첫 장편 시나리오 완성의 고통을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것만으로도 약간 까스활명수 먹는 기분이 났다.
진영씨와 쓰고 있는 주제나 이슈가 꽤 많이 겹쳐서
내가 도움드릴 수 있는 게 없을까 곰곰이 고민해 보게 된다.
앞으로 내가 걸어가고 싶은 방향성과
제법 스탭이 맞는 좋은 동갑내기 친구를 만나서 참 좋다.
진영씨를 소개해 준 지은 언니한테두 참 고맙구.
역시나, 좋은 글이다 !
쓰자. 쓰자!
○●
즉각적으로 반응 되는 것 말고,
천천히 오래 남는 것들에 대해 신중하게 선별하고, 선택하고
정성스럽게 가꾸어야겠다는 욕구가 다시 올라왔다.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 사이를 유연하게 오고 가지만
든든하고 건강한 심지 하나는 내 마음속에 심어 놓고
어딜 가든 안정적인 나만의 아우라를 갖고 싶다.
나 스스로가 믿음직스러우면
어떤 상황과 사람을 만나더라도 두렵지 않다.
나는 나 스스로를 지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일기를 다 쓴 후 체육관으로 내려가서
아령을 들고 어깨 운동을 하러 가야지.
5/24
오랜만에 수영을 다녀왔다.
수영 시간을 오후 2시로 바꿨다.
사람이 별로 없으니 연습을 훨씬 많이 할 수 있어서 좋다.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는 거라 처음엔 좀 무서웠는데
중반쯤에는 익숙해져서 호흡이 안정되었다.
이제 물에 떠서 팔을 골리고 다리로 물장구치는 것 까지는 된다.
다만 오른쪽으로 호흡하는 법을 계속 배우고 있다.
오랜만에 단정한 원피스도 입고,
멋 내보고 싶었다.
이번 주에는 만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솝 매장을 서칭해, 내일 만날 친구의 선물을 사고
오늘 만나는 희정 언니에게 드릴 차를 샀다.
체코에 살았을 때 언니가 추천해 주었던
시즌티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멀리서 노트북하고 있는 언니 발견.
말로만 듣던, 셰프님 !
가게 이사하기 전에,
초대하고 싶으셨다고 했다.
샴페인과 스시를 곁들여 먹었다.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 본 풍경이 좋았다.
가게 안에서 언니의 느낌이 묻어 나온다고 생각했다.
체코에 있었을 때 언니가 살던 큰 창문이 있던 화이트 톤의 오래된 유럽 건물.
그곳에는 늘 책이 한가득 꽂혀 있었다.
언니의 집에 방문할 때 종종 꽃을 사갔던 걸로 기억한다.
다 마신 와인병이나 페트병에 그 꽃을 꽂아 놓았던 것 같은데.
무작정 캐리어 하나 끌고 돌아다니던 그때의 내가
해외에서도 제대로 갖추면서 생활할 수 있구나를 알게 해 준 사람이다.
아마 다음에 해외를 오래 나가게 된다면,
월세가 약간 더 비싸더라도 제대로 된 집을 얻을 것 같다.
그리고 밥을 직접 지어 먹으려고 노력하겠지.
언니에게 가끔 프라하게 있는 꿈을 꾼다고 했다.
언니도 가끔 프라하 꿈을 꾼다고 했다.
우리는 구글 지도를 켜 각자 좋아했던 식당과 카페와 공원 등을
구글맵 위성 지도로 확인해 보았다.
너무 맛있었던 소프트 드링크 !
집에 가면 구매하려고 기록으로 남겨놓았다.
돌아가기 전에 그림 한 장을 주셨다.
그림 종이가 구겨지지 않게 조용히 운반하며,
버스 안에서 이상한 향수병 같은 걸 느꼈다.
언니가 프라하에서 팁투어 가이드를 도전했던 게...
36살이라고 하셨었는데 생각해 보니 언니 진짜 용감했네.
오랜만에 운동화 아닌 구두를 신어 보았다.
발이 금방 욱신욱신 아파왔지만
내 발이 구두에도 적응해 줬으면 한다.
문득 사람들과 함께 건물 옥상을 내려보는데,
내 삶에 애정을 더욱 실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귀한 삶. 한 번뿐인 귀한 삶.
아무거나 이지 않게.
5/25
세린이와 어울리는 엽서를 꺼내
흰 칸에 빽빽하게 글자를 적어 넣었다.
오랜만에 만난 세린은 머리가 길어있었고
활짝 웃는 함박웃음은 여전했다.
세린의 말은 듣는 시늉이 아니라 진짜 귀담아듣게 된다. 가만히 듣게 된다.
굳이 내 주석을 달지 않아도 말하는 사람이 내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에.
어떤 순간들은 그 감정의 폭이 깊어서
차마 글자로도 남기지를 못하겠구나.
여전히 세린을 좋은 날씨에 만날 수 있어서 기뻤다.
카페 화장실에 걸려 있었던 문구.
당신이 부재하고 나서야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볼 수 없게 되어서야 보이는 것들은 이렇게 남아서 당신을 대신한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당신보다도
남겨진 마음들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세린을 만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
피곤하기는커녕 기운이 퐁퐁 솟았다.
○●
기랑이에게 연락이 왔다.
내가 부산을 떠난 후, 훨씬 더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운동도 다시 하게 되고, 일 문의도 끊이지 않고 건강하게 먹고 있다고. 잘 살아가고 있다고.
여행은 떠나는 것 자체보다 잘 되돌아오는 과정이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된다.
우리 둘 다 잘 돌아왔다.
5/26
오늘은 좀 늦게 일어났다.
그동안 잦은 외식으로 속을 좀 비우고 싶어
사과 한쪽과 영양제, 양파즙을 챙겨 먹었다.
스트레칭, 상체 근력, 빨리 걷기 20분을 간단하게 했다.
어차피 오후에 수영도 다녀와야 해서.
운동을 쉬엄쉬엄하니 몸이 더 피곤해지고,
피곤한 몸으로 운동을 하는 게 맞을까?의 돌고도는 의문이 있었는데,
다시, 체력을 쌓아 올려야겠다는 생각에 다다랐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니 집 앞에 이런 소포가.
진아님이 보내주신 시 카드와
직접 만드신 팔지.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포기하지 않으려 하시고
그 안에 쏟는 마음과 몸의 에너지가 얼마나 크다는 걸 알기에
친구로서 응원하는 마음이다.
어제는 그동안 많은 친구들을 만나느라 하지 못한 일들을 하나씩 했다.
때 탄 가을 운동화를 세탁소에 맡겼고, 새 운동화도 하나 샀다.
○●
부드러움 속에 강함이 있고
고요함 속에 풍요로움이 있네.
5/27
어제 산 새 운동화.
아마 이번 여름에 주구장창 떨어질 때까지 이것만 신을 예정.
전날에 핸드폰을 너무 많이 해서 머리가 쪼개질 것 같았기에
다음날 핸드폰을 좀 멀리하고 싶었다.
오후 6시까지는 핸드폰 디톡스를 하려고 했는데
그 다짐이 3,4시가 되니 무너지고 말았다. ㅠㅠ...흙.
아침에 나는 강한데, 오후의 나는 약하다.
최근 계속 취업을 고려해 보게 되는 이유도 이와 같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시스템 안에 들어가는 게 오히려 더 효율적일지 모른다.
몇 주 전에 수정한 이력서가 스스로 실망스럽다.
사람들이 정말 많이 찾지만, 절대로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포트폴리오를 앞에 배치하고
다큐멘터리 스타일의 영상을 뒤로 빼고, 경력을 축소했다.
스스로에 대해 용기가 좀 없었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이력서로 덜컥 합격이라도 하게 되면 그것은 그것 나름대로 지옥이 시작된다는 걸 안다.
잘하고 싶지도 않고, 하면 스트레스 받는 영상만 주구장창 만들다가 몇 달 안 다니고 회사를 그만두는 것보다
좀 더 기다리더라도 내가 잘 해왔고 잘하고 싶은 영상을 만드는 곳에서
나의 에너지를 쓰고 기꺼이 헌신하는 편이 낫겠다 싶다.
아무래도 이번 주가 가기 전에 다시 이력서를 수정해야겠다.
어제 그래도 가장 잘 한 일은 땀날 때까지 열심히 운동을 한 것.
정말 너무너무 하기 싫었는데, 꾹 참고 땀을 쭉 빼니 왠지 내일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내 일기를 돌아보니, 온통 나는 내 생각으로 꽉 차있네 ... ?
노숙자 밥퍼 봉사활동을 엄청 오래 한 엄마가 말해주는 봉사활동 얘기나
친구가 블로그 일기에 쓴 어린이에게 한 움큼 따듯한 세상에 대한 글을 읽고 개운한 마음이 든다면
내 세상은 온통 나로 꽉 차 있는 게 약간 현기증이 난다.
어쩌면 영상 안에서라도 타인의 삶에 보탬이 되는 영상을 만드는 게
이기적인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이타성일지도 모른다.
어제는 웬일로 아빠가 전화가 왔다. (서로 연락 잘 안 함)
"야 ~ 이수역인데 넌 빵 뭐 먹을래?"
아빠가 좋아하는 이수역 빵집.
거기 빵집은 내가 좋아하는 버터 프레츨도 없고, 슈크림도 없는 고로케나 맘보스빵을 잔뜩 파는 시장 빵집이다.
저녁에 가면 못 판 빵을 늘 떠리로 싼 값에 판매하는데 아빠는 그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봉다리 한가득 빵을 사온다.
엄마랑 나는 이러다 당뇨병 걸리겠다며 투덜거리며 빵을 해치운다.
결국 집안에 제일 오래 붙어 있는 자들이 집안의 음식들을 거덜 낼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맛없으면 안 먹으면 되는데, 나는 굳이 투덜대면서 빵을 먹는다.
"아빠는 왜 맨날 맛없는 것만 사 와?" (아이스크림도... 아맛나 사오구...)
그래서, 아빠가 이번엔 전화를 거셨나?
빵 사 오지 말고 과자를 사 오라고 했더니 카톡으로 보내라고 하며 쿨하게 끊으셨다.
과자 클래식. 새우깡, 양파링, 빈츠 !!
하며 다다닥 카톡을 보냈다.
아빠가 과자가 든 봉다리를 들고 내 이름을 크게 부른다.
"김 ~~ 송 ~~~~ 미 !!!"
나는 비밀기지에 침투한 닌자처럼 다다다닥
과자봉다리를 낚아채어 샤샤샥 과자 봉지를 뜯는다.
오늘 오전에 한 운동은 다 물거품이 되었지만 과자는... 이 세상이 허락한 유일한 마약...
아빠는 먹지도 않는다.
땅콩 드시면서 최애 프로그램 세계태마기행 터키 편을 보신다.
진짜 나 먹으라고 사 오신 모양.
엄마가 금요 예배를 마치고 돌아와 과자 봉지를 보며 잔소리를 쏟아낸다.
"야....너 밥도 안 먹고 과자만 먹냐."
(아.... 34살 돼서도 이런 잔소리 들을 줄 몰랐음 ... )
"엄마, 과자 먹으려고 저녁 안 먹은 거야.
저녁도 먹고 과자도 먹으면 뚱땡보 되겠지?"
엄마는 뭔가 맞긴 맞는데 이상하게 찝찝하다는 표정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셨다.
5/28
오늘은 거의 6개월 만에 민규를 만났다.
공간을 여기저기 엄청 옮겨 다닌 것 같다.
소바를 먹으러 갔다.
근데 생각보다 맛이 없어서 잘 먹히지 않았는데,
다음번엔 맛이 없더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다 먹는 습관을 들여야겠다.
지인짜 맛있었던 프로토콜 아메리카노.
복숭아 향이 나는 커피. 정말 맛있었다 !
특히 이 공간은 카공족이 많았는데,
다음에 작업을 하고 한번 들려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왠지 전주의 평화와 평화가 떠오르는 공간이었음.
다음에 간 곳은 그렇게 말로만 듣던 보틀 팩토리 ~
환경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던 곳 !
‘버려진 일회용 컵은 모두 재활용되고 있을까?’
‘일회용 컵 없는 카페는 가능할까?’
‘포장 없이 내 용기에 채워갈 수 있는 시장이 있으면 어떨까?’
‘버려지는 자원의 쓰임을 지역 안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홈페이지에서 퍼 옴)
에 대한 고민으로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재미있는 이벤트를 열기도 한다.
다음주에 마켓이 열리는 것 같던데 관심이 간다.
보틀 팩토리를 나와 홍제천과 연희숲을 걸었다.
슬렁슬렁 걸으며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했다.
나는 아침부터 기운이 나는 스타일,
민규는 저녁부터 비로소 하루가 시작되는 스타일.
지금 슬슬 잠에서 깨고 있을 저녁형 인간을 ㅋㅋㅋㅋ 계속 걷게 했다.
낮에 해 떴을 때 좀 걸으라고 ~
집에 가기 전에 생맥을 마셨다.
친구가 하는 이런저런 말을 듣다가 장점이 많은 것 같으니
스스로를 좀 더 믿어봐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세상은 정말 무시무시하게 터프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가진 보물이 많아도 스스로를 시시하다고 여기면 진짜 시시해지고
스스로 가진 게 보잘것 없어도 스스로 보물이라고 여지면 진짜 보물이 된다.
그게 이 무시무시한 세상을 버텨내는 기초 체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진짜 발이 미더덕이 될 때까지 엄청 걷고 또 걸었네.
많이 걸은 것은 참 잘한 일인 것 같다.
뭔가를 해내려면 머리를 비우고
움직이기부터 해야 한다.
5/29
과거에는 시간을 말도 못 하게 밀도 있게 살았는데,
요즘은 시간을 좀 낭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조급함이 든다.
그런데 낭비하는 게 뭐 어때서.
이 조급함은 내 마음에서 나온 것일까?
사람들의 조급함이 내 마음에 옮겨붙은 걸까?
첫 운전면허 기능 연습을 해보았다.
처음에는 재미있다가 나중에는 어렵고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핸들을 돌리고 조작하는 게 왜 이렇게 헷갈릴까?
아무래도 유인물을 더 보고 가봐야겠다.
나에게 운전을 알려준 선생님께서 자신의 T자 주차 실력이 얼마나 좋은지 강조하기 위해
주변에 있는 동료 선생님을 짚으며 저런 서툰 사람들에게 배우면 떨어지지만 자신은 자신 있다는 듯이 말씀하셨다.
자신을 강조하기 위해, 타인을 깎아 내릴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처음엔 친절하셨던 선생님이 나중에는 낮은 목소리로 짜증을 내셨는데,
수영을 배울 때도 종종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
서툰 사람에게 뭔가를 가르친다는 건 정말 큰 인내심이 필요하지.
선생님들이 덜 짜증 낼 수 있게 분발해야겠다는 생각들과 동시에
내가 누군가에게 영상이나 카메라를 가르치는 입장이 된다면,
끝까지 침착하게 설명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아빠가 메론 빙수를 사놓고 계속 내 후기를 기다리셔서 ㅎㅎㅎ
점심에 메론 빙수를 드디어 먹어봤다.
"송미야, 메론 빙수 먹었냐? 또 사올까?"
"난 솔직히 좀 별로? 그냥 팥빙수가 나은 듯?"
"그냥 팥빙수는 잘 안 팔려서 많어 ~"
"그래 나는 그 잘 안 팔리는 그냥 팥빙수 좋아~"
낮잠을 좀 잔 후에 헬스장에 가서
근력 운동과 땀이 나도록 러닝머신에서 뛰었다.
운동을 마친 후,
나의 해방일지 한편을 보고
미역국을 먹고 또 잠이 들어버렸다.
○●
존재는 잘 팔리거나
잘 안 팔리니까 떠리로 가져가세요 ~ 하는 상품이 아니야.
5/30
어제는 나를 자신 없게 하는 일 하나와
하늘에서 뚝 떨어진 행운 같은 일 하나가 동시에 들어왔다.
나를 자신 없게 했던 일을 일기장에 적을까?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그 일이 자신 있어 질 때쯤 과정을 회고하며 쓰는 게 좋을 것 같다.
최근 가족에게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엄마와는 자주 대화하고, 아빠와는 다양한 추억을 만들고 싶고
언니에게는 그저 무한한 애정을 주고 싶다.
어제 낯설게하기 원고 하나를 뚝딱 만들어 녹음까지 끝내버렸다.
그런데 오늘 다시 이성적인 눈으로 다시 결과물을 확인해 봐야겠다.
약간은 다듬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창작도 삶도 그 알맞은 균형잡기가 관건인 것 같다.
마음에서 욱 올라오는 날것과 그것을 정제하는 것 그 사이.
삶에는 충동도 필요하고, 그 충동을 안정화 시키는 차분함도 모두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 충동도 그리 나쁜 것이 아니라며,
최근 sns 활동을 이전보다 늘리고 있다.
이전보다 삶의 생기가 돈다.
그렇지만 동시에 딸려오는 집착과 욕심 때문에
가만히 있어도 만족되는 마음에는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함을 느낀다.
뭐든 극단적이게 한다, 안 한다. 보다.
잘 조절하는 게 역시 관건.
건강하고 현명한 사람이 되기에는
긴 인내와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직 보고 있는 책들이 많은데,
요즘 보고 있는 책을 다 보면 읽을 다음 책.
○●
사실, 나 스스로에 대해서 약간은 실망하고 반성하게 되어
아침에 일어나 긴 글을 쓰고 회개 기도를 했다.
타인의 어떤 부분을 지적할 때,
그 이전에 나부터 먼저 점검해 보는 습관을 가져야겠다.
부끄러운 마음이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지.
같은 실수를 할 것 같을 때 심호흡 세 번 하기.
5/31
알람을 맞추지 않았는데도
5시 30분에 딱 눈이 떠져서 벌떡 일어났다.
계절 맞이, 방에 붙은 포스터를 바꿔보았다.
옷장에 있는 가을 옷들을 넣어놓고,
여름 옷, 셔츠, 속옷, 양말들을 계절감에 맞게 정리했다.
아직은 그리 덥지 않아서
여름 이불을 꺼내 일단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점심, 저녁은 건강하게 챙겨 먹었다.
바다의 날이라며 오늘만큼은 쓰레기를 줄이자는 친구의 연락을 받고
반찬까지 싹싹 깨끗하게 비워냈고, 최대한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했다.
-----
부지런한 오전 시간을 보내고 수영을 다녀왔다.
자유형을 떼고, 배형을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 자유형 자세가 엉성해서 선생님께 많은 지적을 받지만
그래도 물에 떠서 양 팔을 휘저을 수 있다는 게 기적 같다.
물이 점점 더, 덜 무서워지고 있다.
무언가를 배울 때 한두 번은 재미있고,
그 이후로는 지루해지고
그 다음번은 가고 싶지 않아지다가
그 다다음번엔 좀 익숙해져서 다시 재미있어지는 것 같다.
수영을 다녀와서,
칼 각이 잡혀야 테가 살아나는 옷들을 단정하게 다림질했다.
저녁에 문이끼씨가 좋은 소식을 전해왔다.
이전부터 같이 꼭 가보자고 했던 찻집에서 조촐한 축하를 해줘야겠구먼 ~
당근마켓에서 실한 화분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걸 살까 말까 고민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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